봉황당(호오도)
헤이안 시대 후기 1053년 당시 최고 권력자인 간파쿠 후지와라노 요리미치가 건립한 아미타 불당입니다. 화려한 후지와라 섭정 시대를 떠올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유적으로 귀중한 건축물로 손꼽힙니다. 가장 큰 특징은 이 불당이 연못 안 섬에 세워져 있어 마치 극락 연못에 떠 있는 궁전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수면에 비추고 있는 점입니다. 내부 중앙에는 8척(2.43m) 금색 불상 아미타여래 좌상이 단좌하고 주위 벽과 문에는 구품내영도가, 아미타불 뒤쪽 벽에는 극락정토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중인방 위 작은 벽에는 52구의 운중공양보살상이 걸려 있습니다. 현재는 색이 바랬지만 내부 천장과 대들보는 보상화를 중심으로 한 무늬로 전부 메워져 있었고, 기둥에도 옷자락을 휘날리며 춤을 추는 선녀와 음악을 연주하는 동자, 날아 오르는 봉황, 보상화, 당초문양 등이 그려져 선명하게 채색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닫집 중앙부의 대형 팔화경 이외에 총66개에 이르는 청동 거울이 천장에 달려 있습니다. 야간에 흔들리는 등불 빛을 반사하여 거울이 환상적인 세계를 연출했을 것입니다. “속본조왕생전”이라는 헤이안 시대 책에 ‘극락이 의심스럽다면 우지의 절을 믿어라’라고 적혀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봉황당(호오도)을 지상에 출현한 극락정토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정토원(조도인)
정토원(조도인)은 평등원(뵤도인) 경내에 있는 탑두로 정토종의 고승 에이쿠가 15세기 후반에 평등원(뵤도인)을 복구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찰이라고 전해집니다. 아미타여래 입상, 제석천 입상, 양림암(요린안) 서원 벽화 등의 문화재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나한당(라칸도) (우지시 지정 문화재)
다도 전문가 호시노 도사이와 그의 아들들이 1640년에 건립하였습니다. 주요 건축부재가 건립 당시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천장에 그려진 용의 채색 상태도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정토원 양림암(조도인 요린안) 서원(중요문화재) [비공개]
지정 문화재인 양림암(요린안) 서원은 모모야마성의 유적으로 전해집니다. 설경산수도, 매화도, 화훼도 등의 벽화는 우지시 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작풍으로 미루어 가노 산세쓰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관음당(간논도) (중요문화재) [비공개]
가마쿠라 시대(1185-1333년) 전기에 창건 당시의 본당터에 재건한 불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간소하면서 서까래의 통나무 밑을 둥글게, 위를 각형으로 만든 덴표 시대 이후의 격조 높은 양식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뮤지엄 봉상관(호쇼칸)
종교법인으로는 최초의 종합 박물관(등록 박물관)인 ‘봉상관(호쇼칸)’은 2001년 3월 1일(목)에 개관하였습니다.
뮤지엄 봉상관(호쇼칸)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고하세요.
최승원(사이쇼인)
평등원(뵤도인) 경내에 있는 2개의 탑두 가운데 하나로 천태종계의 독립 사원입니다. 1654년 교토 롯카쿠쇼센인의 승려가 평등원(뵤도인)으로 옮겨와 자신이 거주하던 암자를 최승원(사이쇼인)이라고 부른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소원했던 평등원(뵤도인)과 천태종의 관계는 중세말기 이후 회복되었습니다.
부동당(후도도)
부동명왕을 본존으로 하는 최승원(사이쇼인)의 본당으로 엔노오즈누 상이 본존과 나란히 안치되어 있습니다. 인접해 있는 지장당(지조도)은 지장보살 좌상을 모시고 있는 작은 불당입니다.
미나모토노 요리마사 묘
1180년 5월 모치히토 왕의 명을 받들어 헤이케 일족 토벌에 나선 미나모토노 요리마사가 우지 전투에서 패한 후 평등원(뵤도인)에서 시를 남기고 자결하였습니다. 매년 5월 26일 ‘요리마사 기일’에 법회가 열립니다.
자결 전 남긴 시 “매몰된 나무처럼 꽃도 피지 않은 덧없는 나의 인생 슬프기 그지없구나”
부채 잔디(오기노 시바)
1180년 5월 모치히토 왕의 명을 받들어 헤이케 일족 토벌에 나선 미나모토노 요리마사는 우지 강에서 헤이케 군의 추격을 받자 평등원(뵤도인)에서 자결하였습니다. 자결하기 전 군대를 지휘할 때 쓰던 부채를 펼치고 시 한 수를 읊은 후 서쪽을 향해 ‘나무아미타불’을 외쳤다고 합니다.
자결 전 남긴 시 “매몰된 나무처럼 꽃도 피지 않은 덧없는 나의 인생 슬프기 그지없구나”